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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권순영] simple

 

 

 

그 모든 것이 그냥 간단했으면 좋겠다.

나를 기쁘게 하는 모든 것,

나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이


그냥

간단했으면 좋겠다.









안 먹었네.

 

일부러 남겨놓은 볶음밥은 줄어들지 않은 채로 말라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대충 쏟아붓고 밀린 설거지를 끝내고 멍하니 서서 거실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거실 소파에서 자고있는 권순영을.

 

그렇게 몇 분을 보내다 밀려오는 갈증에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식탁에 올려 놓았다.

 

 

소파에서 자면 불편할텐데.

 

아무 것도 덮지않고 자는 권순영은 제 덩치와 맞지 않게 꽤나 귀엽게 웅크리고 있었다. 물을 꼴깍꼴깍 삼켜내고는 권순영에게 다가갔다. 빠르게 들이켰던 물이 차가워 머리가 띵해왔다.

 

 

 

 

밤새 추웠던건지 권순영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고있었다.

 

아......

 

그제서야 뼈가 시릴정도의 냉기가 느껴졌다. 평상시에 내 방을 제외하고는 보일러를 켜놓지 않았던 터라 거실은 권순영이 얼어죽지 않은게 다행일만큼 냉랭했다.

아, 물론 인간이 얼어죽을 온도는 아니다.

 

 

 

이내 권순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

 

 

 

아..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잠에 취한 채 비몽사몽한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권순영은 없었다. 거실을 비롯한 내 집 그 어디에도 권순영은 없었다.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 늘 그랬 듯이 손을 뻗었는데 잡혀야 할 것이 잡히지 않았다.

 

오전에 일어났을 때 물병을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 식탁을 쳐다봤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훈훈해진 공기때문에 물병 표면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방울 방울 모여 흘러내린 탓에 식탁은 이미 꽤 많은 양의 물들이 고여있었다.

 

나는 찬 물만 마신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속이 미식거리고 왠지모를 역한 느낌이라 찬 물만 마셨다. 물병에서 아직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정도의 찬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 터라 애꿎은 물병만 노려봤다.

 

기운이 빠진 채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소파 위에는 내 민트색 이불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생긴거와 달리 착한아이인가보다. 미식미식거리는 기분에 이불 위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데 오른손에 무언가 잡혔다.

 

 

 

 

감사했습니다.

 

삐뚤빼뚤 못 난 글씨체로 6글자가 적혀져있는 쪽지.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최승철이 굳이 권순영을 나에게 부탁한 건지. 난 또 도망쳤던 거다.

 

 

나를 닮은 권순영에게서.

 

 

 

 

 

 

거칠게 눈가를 벅벅 닦고 아무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 집을 뛰쳐나왔다.

 

어디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뛰었다. 어디선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그 아이를 향해 뛰었다.

숨이 차고, 심장이 뛰어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어디선가 그 아이가 울고있을까봐.

 

 

우리 순영이가 울고 있을까봐.

 

 

 

 

처음와보는 동네라 모르는 길에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찾지 못 하는 사이에 순영이가 위태로울까봐..

내가 찾지 못 하는 사이에 순영이가 넘어졌을까봐..

 

 

 

먹먹해진 가슴에 괜히 주먹으로 내려치고 있을까.

어디선가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영이다.

 

 

 

 

달리다 힘이 풀려 넘어질 것 같았지만 계속 달렸다. 

어느새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도착했고. 사람들의 시선 끝에는

 

순영이가 있었다.

 

 

 

 

" 꼬라지가 이게 뭐니 ! "

 

" 역시 애미, 애비 없는 것들은 ! "

 

 

모욕스러운 말을 듣고도 순영이는 가만히 있었다.

 

익숙하겠지... 자신이 이러쿵 저렁쿵 말해봤자라는 것을 순영이는 이미 잘 알고있다.

 

 

 

" 쯧쯧, 가족도 없으면 알아서 앞가림을 하는게 어떠니 "

 

더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보다 조금 떨어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화풀이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자꾸 손가락으로 순영이의 이마를 툭툭 밀어내는 여자의 행동에 얼른 다가갔다.

 

여자의 손가락을 거칠게 쳐내고, 순영이를 내 뒤로 숨겼다.

 

 

 

" 뭐야. 넌? "

 

" 그러는 그 쪽은 누구신데 우리 애한테 그러시는 거죠? "

" 우리 애? 우리 애? 당신 권순영이랑 무슨 사이야? "

" 제 동생인데요? "

 

 

이제와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 내 모습이 순영이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저 내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다.

 

 

 

" 저희 순영이가 아주머니에게 어떤 행동을 했길래 그러시는거죠? "

" 부딪혀놓고 사과를 안하고 가는게 예의가 없길래 한 소리 한게 잘 못이야? "

" 사과 안했다고 모욕적인 말을 하시는 아주머니도 예의가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은데요? "

" 어디서 나이도 어린게 따박따박 말대꾸야? 니가 권순영을 잘 모르나 본데 이 동네에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는 양아치라고 "

 

" 제 동생에대해 알지도 못 하면서 그렇게 말씀 하시지 마세요. 그리고 동생이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

 

구십도로 숙였던 허리를 피고 여자의 얼굴을 보니 참 가관이였다. 아마 순영이와 알고있던 사람인 듯 싶은데 내가 누나라고 나서서 뭐라하니 할 말이 없는 듯 싶다.

 

 

" 마음만 같아서는 아주머니에게도 사과를 요구하고 싶은데. 배려도 없고 예의도 없는 아주머니의 사과를 받아봤자 순영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으니 사과는 요구하지 않을게요 "

 

그럼 안녕히가세요. 뒤를 돌아 순영이의 팔목을 잡고 그 곳에서 벗어났다.

한참을 걸었을까. 순영이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떼어냈다.

그에 나는 멈춰 쳐다보니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날 쳐다보는 순영이였다.

 

 

" 갑자기 왜 그러시는거에요 "

 

아...

예전에 나는 어떤 말이 듣고싶었지...

 

 

" 하, 됐고. 저 이만 가볼게요. "

 

 

 

순영이가 한 발짝 멀어졌다.

순영이가 두 발짝 멀어졌다.

 

그렇게

 

순영이는 입곱 발 멀어졌다.

 

 

 

 

" 누나가 많이 늦었지? 순영아. "

" 미안해. 누나가 겁이 많아서 그랬어 "

 

 

 

순영이의 걸음이 멈추었다. 

 

 

 

" 그래도 누나 용기 많이 내었는데 "
" 와서 누나 좀 안아주라 "

 

 

 

 

순영이가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순영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

 

 

 

내 옷은 순영이의 눈물자국으로 젖어갔다.

 

 

 

#

 

 

 

순영이와 함께 돌아온 집은 방금 뛰다 들어온 나에게는 매우 덥게 느껴졌다.

 

사용하지 않던 방을 순영이에게 내어주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평소 땀 나는 걸 싫어해서 잘 하지 않는 운동이였는데 오늘 무리를 했던 터라 피곤해 죽을 것 같다.

 

 

물 한 잔만 마시고 씻어야지.

 

식탁에 올려져있던 물병을 들어 컵도 쓰지않은채 꼴깍꼴깍 마셨다.

 

 

이번엔 머리가 띵하지 않았다.

 

 

 

 

 

 

#

 

 

 

 

" 권순영! 양말 좀 똑바로 벗으라고 했지! "

 

" 권수영! 오늘 설거지는 니가 하기로 했잖아! "

 

" 권순영! 내가 세탁기 좀 돌려달라고 했잖아! "

 

 

그로 부터 한달 후.

 

 

순영이는 진짜 내 동생이 되었다.

 

 

 

어휴, 27살이 19살 밥을 챙겨주고 잠도 깨워줘야한다니 !

 

 

" 권순영! 일어나라 "

 

" 으으~ 5분만 더 잘래 "

 

" 권순영~ 지금 당장 일어나 "

" 아아~ 누나~ "

 

순영이는 참 애교가 많다.

자기가 불리할 때 마다 애교를 부리는데

흥, 내가 그런 애교에 넘어갈리가

 

있지. 넘어가지. 완전 넘어가지

 

 

" 순영이...5분만 더 잘래? "

" 으응 "

 

" 이번이 마지막이다. "

 

벌써 100번은 더 한 말이였지만...

피식 웃고는 애기처럼 자고있는 순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누나 "

 

" 응 "

 

" 좋은 아침 "

 

" 순영이도 좋은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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